옛글 › 징비록 › 권14 진사록

경리의 분부로 대구 군량 나르기를 재촉한 까닭을 아뢰는 장계以經理分付催督大丘糧運緣由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46자 · 낭독 2.9분

징비록 권14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在安東催發糧運今日馳到永川將向安康經理接伴使李德馨馳通內經理當日五更發向蔚山臨發招德馨云軍糧不爲趁給朝鮮無紀綱無法度致誤大事。國王何不以王法治誤事之臣乎尹承勳成泳幷調來此一路使之催運柳永慶則留看老營回時當從梁山密陽大丘之路而來柳成龍則急往大丘等處催備糧餉云安康距慶州四十里自永川向慶州直路所經故當初尹承勳等各官糧餉皆輸入其處吳總兵軍糧則皆支放於安康而提督之軍從間路直向慶州倉卒搬運安康之糓移就慶州事多怱遽所謂未能趁給者以此故也且大丘等處已輸之糧以諸軍皆會於慶州故方盡發老弱男婦狼狽移運而又有此令梁山密陽方爲賊藪人民盡散雖有傍邑之糓何力輸入况傍邑之糓亦何多得極爲悶迫臣初非管糧之官且新到之初凡運糧多少搬移彼此皆不省始末而分付如此莫知端緒而無可奈何將自永川轉向大丘欲爲輸運未知前頭之事如何不勝憂慮

신이 안동에 있으면서 군량 나르는 일을 재촉해 보내다가 오늘 영천(永川)에 달려 이르러 장차 안강으로 향하려 합니다.

경리 접반사 이덕형(李德馨)이 달려와 통한 안에, 「경리가 그날 오경에 울산으로 떠나면서 떠날 즈음 덕형을 불러 이르되 '군량을 제때 대지 못하니, 조선은 기강도 없고 법도도 없어 큰일을 그르치게 한다. 국왕은 어찌 왕법으로 일을 그르친 신하를 다스리지 않는가. 윤승훈(尹承勳)과 성영(成泳)을 아울러 이 길로 불러와 나르기를 재촉하게 하고, 유영경(柳永慶)은 남아 본영을 지키게 하라. 돌아올 때는 마땅히 양산·밀양·대구 길을 좇아 오리라. 유성룡은 급히 대구 등처로 가서 군량 갖추기를 재촉하라' 하였다」 하였습니다.

안강은 경주에서 사십 리 떨어져 있고 영천에서 경주로 향하는 곧은길이 지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당초 윤승훈 등이 각 고을 군량을 다 그곳으로 실어 들였고, 오총병의 군량은 다 안강에서 지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제독의 군사가 샛길을 좇아 곧바로 경주로 향하므로 창졸간에 안강의 곡식을 옮겨 경주로 나르게 되어 일이 몹시 급작스러웠습니다. 이른바 제때 대지 못하였다는 것은 이 까닭입니다.

또 대구 등처에서 이미 실어 낸 군량은 여러 군사가 다 경주에 모였으므로 바야흐로 늙은이와 약한 이, 남정과 아낙을 다 내어 낭패하며 옮겨 나르고 있는데 또 이런 영이 있습니다. 양산과 밀양은 바야흐로 적의 소굴이 되어 백성이 다 흩어졌으니, 비록 곁 고을의 곡식이 있은들 무슨 힘으로 실어 들이겠습니까. 하물며 곁 고을의 곡식인들 또 어찌 많이 얻겠습니까. 지극히 딱하고 급합니다.

신은 애초에 군량을 맡은 관원이 아니요 또 새로 이른 처음이라, 무릇 군량을 나르는 수의 많고 적음과 이쪽저쪽 옮기는 일을 다 그 시말을 살피지 못하였는데 분부가 이와 같으니 실마리를 알지 못하여 어찌할 수 없습니다. 장차 영천에서 대구로 돌아 향하여 실어 나르려 하나 앞일이 어떠할지 알지 못하니 근심을 이기지 못합니다.

협주 1

노영(老營) — 대군이 떠난 뒤의 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