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와 황해도에 보내 군무를 알린 글移京畿黃海道軍務文
國家昇平百年民不知兵一遇狂寇不能支吾禍至於此今者懲創往事圖毖後患之䇿惟在於鍊兵一事但爲之不得其方使奸吏操縱其間則民情有所不安亦非可行之䇿故別設武學事目使之各在其面隨便操鍊事行移知委京畿防禦使下去時亦擧此意已爲申勅大抵。祖宗朝軍政大綱專在於設立鎭管使有統屬而昇平之後此制墜廢軍政無統兵無部伍卒然遇變將出於朝兵出於野紛然無制如驅群羊以當矢石之場不敗何待今者。朝廷深懲此弊申明鎭管之法非止一再而外方鍊兵之規尙多紊亂失序誠爲寒心頃者忠淸道鍊兵之事。朝廷別遣御史爲之一從訓鍊都監分付施行故其哨官旗隊之法歷歷分明一覽可見分數乃兵家之要法分數旣明然後操鍊可爲而號令可施京畿則有水原廣州楊州長湍四鎭管而江華喬桐則以在海中故不屬於陸軍而別爲一鎭黃海道則有海州黃州二鎭管此其。祖宗經遠之慮今鍊兵之規不可捨此而他求京畿則各鎭管所屬之軍別爲成册從其多少幷其各面哨官旗隊總牒報黃海道亦依此一樣成册急速牒報黃海道海邊各浦屬於所江而僉使爲其鎭管蓋以黃海無水使故使僉使爲鎭管使各浦之勢有所統屬立法本意實非偶然而今則僉使旣不知自爲鎭管所屬各浦又不知屬於所江事無統領何以禦敵今後所江僉使次知屬浦之事一年人番水軍之數時存戰艦之數及常時船隻改造時材木所取處軍士應入數火迫飛報
나라가 태평한 지 백 년에 백성이 군사를 알지 못하여, 한번 미친 도적을 만나자 버티지 못하고 화가 이에 이르렀다. 이제 지난 일을 징계하고 뒷걱정을 삼갈 계책을 꾀함은 오직 군사를 익히는 한 가지 일에 있다. 다만 하는 데 그 방도를 얻지 못하여 간사한 아전이 그 사이에서 농간을 부리면 민정이 편안하지 못하니 또한 행할 만한 계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따로 무학 사목을 마련하여 각각 제 면에서 편한 대로 조련하게 하는 일을 공문으로 알렸고, 경기 방어사가 내려갈 때에도 이 뜻을 들어 이미 거듭 단속하였다.
대저 조종조 군정의 큰 벼리는 오로지 진관을 세워 거느림과 딸림이 있게 한 데 있었는데, 태평한 뒤로 이 제도가 무너져 군정에 거느림이 없고 군사에 대오가 없어, 갑자기 변을 만나면 장수는 조정에서 나오고 군사는 들에서 나와 어지러이 제도가 없으니, 양 떼를 몰아 화살과 돌이 오가는 마당에 맞서게 하는 것 같아 패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는가.
이제 조정이 이 폐단을 깊이 징계하여 진관의 법을 거듭 밝힌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바깥 고을의 군사 익히는 규례가 아직도 어지럽고 차례를 잃은 것이 많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지난번 충청도에서 군사 익히는 일은 조정이 따로 어사를 보내어 하게 하되 한결같이 훈련도감의 분부를 좇아 시행하였으므로, 그 초관과 기총·대총의 법이 뚜렷이 분명하여 한번 보면 알 수 있다. 부대를 나누어 헤아리는 것은 곧 병가의 요긴한 법이니, 그것이 밝아진 뒤에야 조련을 할 수 있고 호령을 베풀 수 있다.
경기에는 수원·광주·양주·장단 네 진관이 있고, 강화와 교동은 바다 가운데 있으므로 육군에 붙이지 않고 따로 한 진으로 삼았으며, 황해도에는 해주·황주 두 진관이 있으니 이것이 조종께서 멀리 내다보신 염려다. 이제 군사 익히는 규례를 이를 버리고 달리 구할 수 없다. 경기는 각 진관에 딸린 군사를 따로 책으로 만들되 그 많고 적음을 좇아 각 면의 초관과 기총·대총을 아울러 보고하고, 황해도도 이와 한가지로 책을 만들어 급히 보고하라.
황해도 바닷가 각 포는 소강(所江)에 딸리고 첨사가 그 진관이 되니, 대개 황해에 수사가 없으므로 첨사를 진관으로 삼아 각 포의 형세가 거느림과 딸림이 있게 한 것이라 법을 세운 본뜻이 실로 우연하지 않다. 그런데 이제 첨사는 이미 스스로 진관이 된 줄을 알지 못하고 딸린 각 포도 또한 소강에 딸린 줄을 알지 못하여 일에 거느림이 없으니 무엇으로 적을 막겠는가. 이 뒤로는 소강 첨사가 딸린 포의 일을 맡아, 한 해 번드는 수군의 수와 지금 있는 전함의 수와 평시에 배를 고쳐 지을 때 재목을 얻을 곳과 들어가야 할 군사의 수를 별똥처럼 급히 보고하라.
협주 1
同月十九日
같은 달 열아흐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