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5 군문등록

경기와 황해 관찰사에게 보낸 글移京畿黃海觀察使文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648자 · 낭독 5.1분

징비록 권15 군문등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兵興四載各道各官倉糓一樣蕩竭前頭若又有調發戰需之事則糧餉出處百無可辦糧餉不足則雖有千兵萬馬高城深池將無所用今日措置糧餉一事最爲急先之務不可少忽糧餉措置之路亦無他䇿不過曰田稅也貢物作米也屯田所出也奴婢身貢作米也皀隷番價米也軍士自願納米除防也煮鹽貿糓也此外各宮糶糴雖係本官倉糓而亦不可不知其數京幾則今年田稅除作租收以米豆以爲軍糧但各官無城子處倉庫虛疎散儲零瑣之米臨時聚用爲難亦非經遠之慮姑以大槪事勢言之則廣州鎭管所屬之糓則藏置於南漢山城水原鎭管所屬之糓則藏置於水原本倉或秃城山城楊州則藏於豐壤山城長湍則藏於長湍本官其布置大略似當如此亦不可一槪爲之但當隨其便宜及民情所願且觀山城倉庫堅實與否而爲之區處在於本道隨便處置其他貢物作米等項一樣處之而各色之糓不可混置於一庫之中使難查考皆當貯於別庫門外書標籖附某色糓幾石入庫則當不時別遣從事官擲扞斗量以驗虛實且屯田所出之糓亦須知數牒報以備繼用之資皀隸價米趁此秋糓未盡之時依數收捧軍士自願納糧代妨者京畿則似無此例如有自願者則收捧無妨各項之糓雖零瑣湊合而所得終是不敷不足以當大軍調發之需甚爲可慮自古兵興之際必以鹽鐵之利以裕軍國之需本國四面皆海鹽之出於海水者其利無竆只緣無主管善處之人一無措辦之事今以京畿一道之勢言之則漢江之水達于忠州之境臨津之水達于伊川安峽朔寧兎山之境山谷之民常時貴鹽如金若於海邊措置鹽利且備船隻由兩江散貿忠淸江原京畿黃海之民則公私兩濟一年所得之糓不可勝記軍國經費所出皆當倚此此乃救時經遠之計非尋常小小規模亦在於本道處置之中從長善處後擧行緣由爲先牒報

군사가 일어난 지 네 해에 각 도 각 고을의 창고 곡식이 한결같이 바닥났으니, 앞으로 만일 또 군사를 일으켜 싸움에 쓸 일이 있으면 군량이 나올 곳이 백에 하나도 마련할 것이 없다. 군량이 넉넉지 못하면 비록 천 군사와 만 필 말과 높은 성과 깊은 못이 있어도 장차 쓸 데가 없다. 오늘 군량을 마련하는 한 가지 일이 가장 급히 먼저 할 일이니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군량을 마련할 길도 또한 다른 계책이 없으니, 밭세(田稅)와, 공물을 쌀로 바꾸는 것과, 둔전에서 나는 것과, 노비 신공을 쌀로 바꾸는 것과, 관아 하례(皀隷)가 번 대신 바치는 쌀과, 군사가 스스로 원하여 쌀을 바치고 변방 수자리를 면하는 것과, 소금을 구워 곡식으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밖에 각 궁에서 꾸어 주고 거두어들이는 곡식은 비록 본 고을 창고 곡식에 매인 것이나 또한 그 수를 알지 않을 수 없다.

경기는 올해 밭세를 벼로 받는 것을 덜고 쌀과 콩으로 거두어 군량으로 삼되, 다만 각 고을에 성이 없는 곳은 창고가 허술하고 자잘하게 흩어 쌓아 둔 쌀은 때에 임하여 모아 쓰기 어려우니 또한 멀리 내다보는 염려가 아니다. 우선 대개의 형세로 말하면, 광주 진관에 딸린 곡식은 남한산성에 간직하고, 수원 진관에 딸린 곡식은 수원 본창이나 독성산성에 간직하고, 양주는 풍양산성에 간직하고, 장단은 장단 본 고을에 간직함이 그 벌여 두는 대략이 이와 같아야 할 듯하다. 또한 한결같이 할 수는 없고 다만 그 편의와 민정이 원하는 바를 따르고 또 산성 창고가 튼튼한지 아닌지를 보아 할 것이니, 나누어 처리함은 본도가 편한 대로 처치하는 데 있다.

그 밖에 공물을 쌀로 바꾸는 등의 항목도 한가지로 처치하되, 각 종류의 곡식을 한 창고 안에 섞어 두어 조사하기 어렵게 해서는 안 되고 다 따로 창고에 쌓되, 문 밖에 표지를 써 붙여 아무 곡식 몇 석이 창고에 들었는지 적으라. 그러면 때 없이 따로 종사관을 보내어 말로 되어 헤아려 그 허실을 시험할 것이다. 또 둔전에서 나는 곡식도 모름지기 수를 알아 보고하여 이어 쓸 밑천을 갖추라. 관아 하례의 번 값 쌀은 이 가을 곡식이 다하지 않은 때를 타 수대로 거두라. 군사가 스스로 원하여 군량을 바치고 변방 수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경기에는 이런 전례가 없는 듯하나, 만일 스스로 원하는 자가 있으면 거두어도 무방하다.

각 항목의 곡식이 비록 자잘한 것을 모아도 얻는 바가 끝내 넉넉지 못하여 대군을 일으킬 때 쓰기에 모자라니 심히 염려스럽다. 예로부터 군사가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소금과 쇠의 이익으로 나라와 군사의 쓰임을 넉넉하게 하였다. 우리나라는 사면이 다 바다여서 바닷물에서 나는 소금의 이익이 다함이 없는데, 다만 맡아서 잘 처리할 사람이 없는 탓으로 하나도 마련한 일이 없다.

이제 경기 한 도의 형세로 말하면, 한강 물은 충주 지경에 이르고 임진강 물은 이천·안협·삭녕·토산 지경에 이르는데, 산골 백성은 평시에도 소금 귀하기를 금같이 여긴다. 만일 바닷가에서 소금의 이익을 마련하고 또 배를 갖추어 두 강을 따라 충청·강원·경기·황해의 백성에게 흩어 팔면, 공사가 다 건져지고 한 해에 얻는 곡식을 이루 적을 수 없을 것이다. 나라와 군사의 경비가 나올 곳이 다 마땅히 이에 의지할 것이니, 이는 곧 때를 구하고 멀리 내다보는 계책이요 예사 자잘한 규모가 아니다. 또한 본도가 처치하는 가운데 있으니, 좋은 대로 잘 처리하고 거행할 연유를 먼저 보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