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5 군문등록

붙임 — 관자 내정편附管子內政篇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2 · 한자 323자 · 낭독 3분

징비록 권15 군문등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管仲言於桓公曰公欲速得志於諸侯事有所隱而政有所寓公曰爲之奈何管子曰作內政而寓軍令焉爲高子之里爲國子之里爲公里三分齊國爲三軍擇其賢民爲里君而統其法令且敎以田獵而行其賞罰則民通於軍令矣公曰善管仲令伍家爲軌軌長率之四軌爲里二十人有司率之十里爲連連長率之十連爲鄕鄕良人率之五鄕爲軍五鄕師率之令不得遷徙春以蒐振旅秋以獮治兵軍旅政定於里人與人相愛家與家相保少相居長相游死喪相弔患難相恤吉凶相憂哭泣相哀夜戰其聲相聞足以無亂晝職其目相識歡欣足以相死以守則固以戰則勝公有此敎士三萬橫行天下誅無道以定周室天下大國之君莫之能禦也

관중(管仲)이 환공(桓公)에게 말하였다. 「공께서 제후에게 빨리 뜻을 얻고자 하시면, 일에는 숨겨 두는 바가 있고 정사에는 붙여 두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공이 말하였다. 「어찌하면 되겠소.」 관자가 말하였다. 「안의 정사를 지어 군령을 그 안에 붙이는 것입니다. 고자(高子)의 이를 만들고 국자(國子)의 이를 만들고 공의 이를 만들어 제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삼군을 삼고, 그 어진 백성을 가려 이의 어른으로 삼아 그 법령을 거느리게 하며, 또 사냥으로 가르쳐 상과 벌을 행하면 백성이 군령에 통할 것입니다.」 공이 「좋다」 하였다.

관중이 다섯 집으로 궤를 삼아 궤장이 거느리게 하고, 네 궤로 이를 삼아 스무 사람의 유사가 거느리게 하며, 열 이로 연을 삼아 연장이 거느리게 하고, 열 연으로 향을 삼아 양인(良人)이 거느리게 하며, 다섯 향으로 군을 삼아 다섯 향의 사가 거느리게 하고, 옮겨 살지 못하게 하였다. 봄에는 사냥으로 군대를 정돈하고 가을에는 사냥으로 군사를 다스리니, 군대의 정사가 마을 안에서 정해졌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집과 집이 서로 보전하여, 어려서는 함께 살고 자라서는 함께 놀며, 죽어 초상이 나면 서로 조상하고 환난에는 서로 구휼하며, 좋은 일과 궂은 일에 서로 근심하고 울 때에는 서로 슬퍼하였다. 밤에 싸우면 그 소리를 서로 들어 어지럽지 않을 만하였고, 낮에 맡은 일을 하면 그 눈이 서로 알아보아 기꺼이 서로를 위하여 죽을 만하였다. 지키면 굳고 싸우면 이기니, 공이 이렇게 가르친 군사 삼만으로 천하를 가로질러 무도한 자를 베고 주나라 왕실을 안정시켰다. 천하 큰 나라의 임금이 능히 막지 못하였다.

余旣以隣里之民編伍爲兵且擇其里之才堪統率者爲哨官規式已具頒行京畿等道適安東提督高叔明以管子內政篇見示不意鄙見偶與相符因附于後使觀者有所取信焉

나는 이미 이웃 마을의 백성을 대오로 묶어 군사를 삼고, 또 그 마을에서 거느릴 만한 재주가 있는 자를 가려 초관으로 삼아 규식을 이미 갖추어 경기 등 여러 도에 반포하여 행하였다. 마침 안동 제독 고숙명(高叔明)이 관자 내정편을 보여 주었는데, 뜻밖에 내 좁은 소견이 우연히 서로 맞으므로 뒤에 붙여 보는 이가 믿을 바가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