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5 군문등록

황해도 순찰사에게 보낸 글移黃海道巡察使文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563자 · 낭독 5분

징비록 권15 군문등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凡政事施措之間貴在於順民之情民情旣順則事必有濟急之不可緩之亦不可况當此兵革板蕩之後瘡痍者未起流亡者未集今日之政當以懷保小民弔死問孤爲先使愛洽於民心然後其他鍊兵據險器械修措等事次第可擧此等緣由本道十分詳審施行山城修樂固爲今日之急務然形勢有緊歇之異功役有難易之殊先其緊且易者而後其歇且難者則民力不至困弊而防備之事亦無後時之虞矣近日忠淸道等處亦築山城而處處未得其宜多發民丁幷擧重役而監董者又不得人其於城制曲直山勢闊狹皆不細入思量只以茍且塞責爲務故築城未旣旋卽頹毀民力徒費而終不能爲可守之地極爲寒心道內山城時方始役之處未知幾處監董之人未知何人某處某日始役功役幾何某處形勢最好易於修築本道於始事之初詳盡計度使爲之必可成成之必可守亦不可多用民力於創殘餓羸之餘以擾民心諸處樂城形止急速牒報山城自募入居者除其身役出於權時不得已之擧若一處偶然爲之則猶可也許多山城皆用此令則避役之徒相率而歸之日月漸久則或有不入城中而冒托免役者虛僞滋生則軍士之避防厭番者驛卒舘軍之謀避身役者人吏官屬之厭苦就歇者紛然向之不勝其擾此亦不可不慮大抵山城必在於險絕之地平時則人不樂於居住惟當預設倉庫儲粟其處而或使僧徒居守約束隣近各官之民預爲分付臨時各從指揮處處入保則事甚便宜可以施行古語云百聞不如一見本道親在其處凡有見聞互相通議必使事無過擧然後可以成事爲此知委更加詳審回報

무릇 정사를 베풀고 조치하는 사이에 귀한 것은 백성의 마음을 따르는 데 있다. 백성의 마음이 이미 따르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짐이 있다. 급히 하여도 안 되고 늦추어도 안 되거니와, 하물며 이 싸움으로 나라가 뒤집힌 뒤를 당하여 상한 자가 일어나지 못하고 흩어져 떠난 자가 모이지 못하였음에랴. 오늘의 정사는 마땅히 작은 백성을 품어 보전하고 죽은 이를 조상하며 외로운 이를 위문하는 것을 먼저 하여 사랑이 백성의 마음에 흡족하게 한 뒤에야, 그 밖에 군사를 익히고 험한 곳을 웅거하며 병기를 손질하는 따위의 일을 차례로 들 수 있다. 이러한 까닭을 본도는 십분 자세히 살펴 시행하라.

산성을 손질하여 쌓는 일은 진실로 오늘의 급한 일이다. 그러나 형세에 긴하고 헐한 다름이 있고 역사에 어렵고 쉬운 다름이 있으니, 긴하고 또 쉬운 것을 먼저 하고 헐하고 또 어려운 것을 뒤에 하면 백성의 힘이 곤하고 피폐하는 데 이르지 않고 방비하는 일도 또한 때를 놓칠 근심이 없을 것이다.

요사이 충청도 등지에서도 또한 산성을 쌓는데 곳곳이 마땅함을 얻지 못하였다. 백성의 장정을 많이 내어 무거운 역사를 아울러 일으키고 감독하는 자도 또한 마땅한 사람을 얻지 못하여, 성 제도의 굽고 곧음과 산세의 넓고 좁음을 다 자세히 헤아리지 않고 다만 구차히 책임 면하기만 힘쓴다. 그러므로 성을 쌓아 마치기도 전에 곧 무너져 백성의 힘만 한갓 허비하고 끝내 지킬 만한 땅이 되지 못하니 지극히 한심하다. 도 안의 산성으로 이제 바야흐로 역사를 시작한 곳이 몇 곳인지, 감독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느 곳은 어느 날 역사를 시작하여 공역이 얼마인지, 어느 곳은 형세가 가장 좋아 손질하여 쌓기 쉬운지를 본도는 일을 시작하는 처음에 자세히 다 헤아려, 하면 반드시 이룰 만하고 이루면 반드시 지킬 만하게 하라. 또한 부서지고 남아 굶주려 여윈 나머지에 백성의 힘을 많이 써서 백성의 마음을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되니, 여러 곳의 성 쌓는 형편을 급히 보고하라.

산성에 스스로 응모하여 들어가 사는 자에게 그 몸의 역을 덜어 주는 것은 임시에 부득이하여 나온 조치다. 만일 한 곳에서 우연히 그리하면 오히려 괜찮거니와, 허다한 산성에 다 이 영을 쓰면 역을 피하는 무리가 서로 이끌고 돌아갈 것이요, 세월이 점점 오래되면 더러는 성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거짓 핑계로 역을 면하는 자가 있어 헛되고 거짓된 것이 불어날 것이다. 그러면 변방 수자리를 피하고 번들기를 싫어하는 군사와, 몸의 역을 피할 꾀를 내는 역졸과 관군과, 괴로움을 싫어하여 헐한 데로 나아가려는 아전과 관속이 어지러이 그리로 향하여 그 시끄러움을 이기지 못할 것이니 이 또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저 산성은 반드시 험하고 끊어진 땅에 있으므로 평시에는 사람이 살기를 즐겨 하지 않는다. 오직 마땅히 미리 창고를 베풀어 곡식을 그곳에 쌓아 두고, 더러는 승려로 하여금 살며 지키게 하며, 가까운 각 고을의 백성을 단속하여 미리 분부하였다가 때에 임하여 각각 지휘를 좇아 곳곳에서 들어가 지키게 하면 일이 심히 편하여 시행할 만하다.

옛말에 이르기를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 본도는 몸소 그곳에 있으니 무릇 보고 들은 것이 있으면 서로 통하여 의논하여 반드시 일에 지나친 거조가 없게 한 뒤에야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알리니 다시 더 자세히 살펴 회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