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6 군문등록

경기와 황해도 순찰사에게 보낸 글移京畿黃海道巡察使文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42자 · 낭독 2.9분

징비록 권16 군문등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近日鍊兵之規旣以鄕里村落團聚爲兵此實管子內政篇之遺法欲其平居則患難相救守望相助疾病相扶持有事則同伍共隊死生不離其與聚合遠處之軍面目不相知姓名不得聞情意不相通而强之爲隊伍者甚爲懸絕但有兵則必有食目今公私積蓄掃如脫有調發之事無食之軍必至顚仆亦不可用今欲依隣里修稧之例各於其村其里計其軍之多少而於麥熟及秋糓成熟民間糓賤之際從其所願升升斗斗收合藏置其里漸次添加以爲里中軍人所食則足食之道似在於此假使無兵興之事而蓄積先具則水旱飢饉之災亦當不至於損瘠此古人所謂蓄積生人之大命三年餘一年之蓄之遺意也小民不識遠慮糓賤則濫費無節不念前頭狼狽之憂若非在上之人先爲曉告開以利害則愚民必不能自知然又必於一營一司之中擇其鄕士人之有誠心識慮爲人所信服者以主其事然後乃可有成此乃最急至緊之務本道更爲參商便否報禀施行

요사이 군사 익히는 규례는 이미 향리 촌락을 뭉쳐 모아 군사로 삼는 것이니, 이는 실로 관자(管子) 내정편이 남긴 법이다. 평시에는 환난에 서로 구하고 지키고 망보는 데 서로 도우며 병들면 서로 붙들어 주고, 일이 있으면 같은 오, 같은 대에서 죽고 삶에 서로 떠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먼 곳의 군사를 모아 합쳐 낯을 서로 알지 못하고 성명을 듣지 못하며 뜻이 서로 통하지 않는데 억지로 대오를 삼는 것과는 심히 동떨어진다.

다만 군사가 있으면 반드시 먹을 것이 있어야 한다. 이제 공사의 쌓아 둔 것이 쓸어 낸 듯하니, 만약 불러내는 일이 있으면 먹을 것 없는 군사가 반드시 엎어지기에 이르러 또한 쓸 수 없다.

이제 이웃 마을에서 계를 닦는 예에 따라, 각각 그 마을 그 동리에서 그 군사의 많고 적음을 셈하고, 보리가 익을 때와 가을 곡식이 여물어 민간에 곡식이 흔할 즈음에 그 원하는 바를 따라 되로 되로 말로 말로 거두어 모아 그 동리에 두고 차차 더하여 동리 안 군인이 먹을 것으로 삼고자 한다. 넉넉히 먹일 길이 여기에 있을 듯하다. 가령 군사를 일으키는 일이 없더라도 쌓아 둔 것이 먼저 갖추어지면 물난리와 가뭄과 흉년의 재앙에도 또한 마르고 여위는 데 이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옛사람이 이른바 「쌓아 둠은 사람을 살리는 큰 목숨이요, 세 해 농사에 한 해 먹을 것을 남겨 쌓는다」 한 남은 뜻이다.

작은 백성은 먼 생각을 알지 못하여 곡식이 흔하면 함부로 써 절제가 없고 앞으로 낭패할 근심을 헤아리지 않는다. 만약 위에 있는 사람이 먼저 알려 이해로 열어 주지 않으면 어리석은 백성이 반드시 스스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또 반드시 한 영, 한 사 가운데 그 고을 선비로서 성심과 식견이 있어 남이 믿고 따르는 이를 가려 그 일을 주관하게 한 뒤에야 이룸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곧 가장 급하고 지극히 긴한 일이니, 본도는 다시 편한지 아닌지를 헤아려 보고하고 아뢰어 시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