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6 군문등록

경기 순찰사에게 보낸 글移京畿巡察使文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43자 · 낭독 3.5분

징비록 권16 군문등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今日之勢賊在門庭朝夕將動在我措置之䇿不可少緩然其戰守大要不過四條一曰糧餉二曰軍兵三曰城池四曰器械四者措備而又必不失人和使軍民皆有親附之心又必得將帥而任之然後始可有濟不然則雖有防守之處而無益於事矣本府自受任以來已經半年其欲布置規模則不外於此四者而求其成就之效則尙無一事可以忘憂者以此夙夜憂歎每以求助於當事之地本道宜盡心擧行糧餉則前者已以本道田稅米豆藏於各官以備不時之需其數不過九千餘石不足以供數千兵一月之糧其後又令勸諭村落令各出義粟以備不時之用前監司時至於作爲榜文知委爲先相考擧行軍兵則分爲四營出左右防禦使以統之觀其成效多少而賞罰當在於防禦使各別申勅秋成農歇之後合鎭大閱惟左右前後營軍人各爲帶牌事已爲知委左營則幾盡帶牒而其他營軍則時未擧行幷爲知委擧行南漢山城措置事前日已曾面議今據別將權應元等牒報炮樓材木六條在山下未得輸入云某條指揮使之及時輸入器械則各官一切蕩然此非數日間措備之事必須多般預措可以應用於倉卒前者自軍門分送箭竹於各官亦令急速造作畢造後更爲受去連綿造作他餘事亦十分申勅無失時刻

오늘의 형세는 적이 문 앞뜰에 있어 아침저녁으로 장차 움직일 것이니, 우리 쪽에서 조처할 계책을 조금도 늦출 수 없다. 그러나 그 싸우고 지키는 큰 요체는 네 조목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는 군량이요, 둘째는 군병이요, 셋째는 성지요, 넷째는 무기와 기구다. 이 넷을 갖추어 마련하고 또 반드시 사람의 화합을 잃지 않아 군사와 백성이 다 친하여 붙좇는 마음을 갖게 하며, 또 반드시 장수를 얻어 맡긴 뒤에야 비로소 이룸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막아 지킬 곳이 있어도 일에 이로움이 없다.

본부가 소임을 받은 이래 이미 반년이 지났다. 베풀고자 하는 규모는 이 네 가지 밖에 나지 않으나, 그 이룬 효험을 구하면 아직 한 가지도 근심을 잊을 만한 것이 없다. 이 때문에 밤낮으로 근심하고 탄식하며 늘 일 맡은 자리에 도움을 구한다. 본도는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거행하라.

군량은 전에 이미 본도의 전세 쌀과 콩을 각 고을에 갈무리하여 불시의 쓰임에 대비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수가 구천여 석에 지나지 않아 수천 군사의 한 달 양식을 대기에도 모자란다. 그 뒤 또 촌락에 권유하여 각각 의곡을 내어 불시의 쓰임에 대비하게 하였고, 전 감사 때에는 방문을 지어 알리기까지 하였으니 먼저 상고하여 거행하라.

군병은 네 영으로 나누고 좌우 방어사를 내어 거느리게 하였다. 그 이룬 효험의 많고 적음을 보아 상벌이 마땅히 방어사에게 있을 것이니 각별히 거듭 일러라. 가을걷이가 끝나고 농사가 한가한 뒤에 진을 합하여 크게 사열하겠다. 오직 좌·우·전·후영 군인이 각각 패를 차는 일은 이미 알렸다. 좌영은 거의 다 패를 찼으나 그 밖 영의 군사는 아직 거행하지 않았으니 아울러 알려 거행하게 하라.

남한산성 조처하는 일은 전날 이미 낯을 맞대고 의논하였다. 이제 별장 권응원(權應元) 등의 첩보를 보니 포루 재목 여섯 조가 산 아래에 있어 실어 들이지 못하였다 한다. 아무 조목으로 지휘하여 때에 미쳐 실어 들이게 하라.

무기와 기구는 각 고을이 일체 텅 비었다. 이는 며칠 사이에 갖출 일이 아니니 반드시 여러 가지로 미리 마련하여야 창졸간에 응해 쓸 수 있다. 전에 군문에서 살대를 각 고을에 나누어 보내고 또 급속히 만들게 하였으니, 다 만든 뒤에는 다시 받아 가 이어 가며 만들라. 그 나머지 일도 십분 거듭 일러 시각을 잃지 말게 하라.

협주 1

저본은 「左營則幾盡帶牒」이나 「帶牌」의 잘못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