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6 군문등록

황해도 관찰사에게 보낸 글移黃海道巡察使文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552자 · 낭독 3.9분

징비록 권16 군문등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江陰一縣以邑殘民少已爲合併亦出於隨時救弊之意但郡邑布置。祖宗朝皆量其形勢道里而爲之且以本道形勢言之則自京城通於西方之路有二絛一條自開城府出於興義由猪灘達於平山一條由兎山新溪谷山達於成川其間雖不無小路傍通之處而大槪則此兩路爲形勢所在也至如江陰則在猪灘下流水路則通於喬桐江華陸路則通於白川延安海州實乃形勢可據之地故倭賊由直路以下之時旣置陣於興義以遏脫彌谷吾助川兩岐之衝又於江陰置陣使白川延安之軍不得出入侵擾直路往來之賊其審察於形勢而知所據守也如此今江陰若廢則平山白川直路之間道里濶遠形勢不接恐非長久之計故本府之意則常欲增重江陰之勢別於臨江斗絕之處設險耕守以接猪灘路脈然後賊兵不敢肆意直向於平山今雖已爲合併不可更置縣監而此意則不可忘之且合併之邑人吏官屬必提挈家産棄其土田就役於所屬之邑故先爲流散且本邑爲主而見屬者爲奴故凡有差役不無侵責於屬邑村民亦受其弊畢竟兩邑同歸於一失此合併之所以難爲也今江陰則當別爲處置縣內人吏官屬使之仍留其處毋得往役於白川仍令其處有識勤幹之人定爲屯長之任備給農牛種子使之招集流亡力於耕墾數年之後人民稍集氣勢稍蘇則其邑可以復設設險遮截之計可以成形但屯長不得其人則事孤條理民之受弊依舊此等曲折急速商量且訪本土民情飛報施行廢縣必有文廟及城隍社稷之壇一朝人神失依處置不可緩忽此亦何以爲之幷爲相考牒報

강음 한 고을은 고을이 쇠잔하고 백성이 적어 이미 합쳤으니, 이 또한 때를 따라 폐단을 구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다만 고을을 벌여 둔 것은 조종조에서 다 그 형세와 이수를 헤아려 한 일이다.

또 본도의 형세로 말하면 서울에서 서쪽으로 통하는 길이 둘이다. 한 길은 개성부에서 흥의로 나와 저탄을 거쳐 평산에 이르고, 한 길은 토산·신계·곡산을 거쳐 성천에 이른다. 그 사이에 곁으로 통하는 작은 길이 없지 않으나 대개 이 두 길에 형세가 있다.

강음으로 말하면 저탄 아래쪽에 있어 물길로는 교동·강화에 통하고 뭍길로는 배천·연안·해주에 통하니, 실로 형세가 의거할 만한 땅이다. 그러므로 왜적이 곧은 길로 내려올 때 이미 흥의에 진을 두어 탈미곡과 오조천 두 갈래의 요충을 막고, 또 강음에 진을 두어 배천·연안의 군사가 나와 곧은 길을 오가는 적을 치지 못하게 하였다. 적이 형세를 살펴 지킬 곳을 안 것이 이와 같았다.

이제 강음을 없애면 평산과 배천 사이 곧은 길이 이수가 멀어 형세가 이어지지 않으니 길이 갈 계책이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본부의 뜻은 늘 강음의 형세를 더 무겁게 하고, 따로 강에 임한 깎아지른 곳에 험한 목을 베풀어 밭 갈며 지켜 저탄의 길줄기에 잇고자 한다. 그런 뒤에야 적병이 감히 마음대로 곧장 평산으로 향하지 못한다. 이제 이미 합쳤으니 다시 현감을 두지는 못하나 이 뜻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

또 합친 고을은 아전과 관속이 반드시 가산을 이끌고 제 전토를 버린 채 붙은 고을로 가 역을 지므로 먼저 흩어진다. 또 본 고을이 주인이 되고 붙은 쪽이 종이 되므로 무릇 차역이 있으면 붙은 고을에 떠넘기지 않음이 없어 촌민도 그 폐를 받는다. 마침내 두 고을이 함께 그르침에 돌아가니 이것이 합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제 강음은 마땅히 따로 처치하여, 현 안의 아전과 관속을 그곳에 그대로 머물게 하고 배천에 가 역을 지지 못하게 하라. 이어 그곳에서 식견 있고 부지런한 사람을 둔장의 소임으로 정하고 농우와 씨앗을 갖추어 주어,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아 갈고 일구기에 힘쓰게 하라. 몇 해 뒤에 백성이 조금 모이고 기세가 조금 살아나면 그 고을을 다시 둘 수 있고, 험한 목을 베풀어 막을 계책도 꼴을 이룰 수 있다. 다만 둔장이 그 사람을 얻지 못하면 일에 조리가 없어 백성이 폐를 받음이 예와 같을 것이다.

이런 곡절을 급속히 헤아리고, 또 그 고장 민정을 물어 급히 보고하여 시행하라. 없앤 현에는 반드시 문묘와 성황·사직의 단이 있으니, 하루아침에 사람과 신이 의지할 데를 잃는다. 처치를 늦추어 소홀히 할 수 없으니 이것도 어찌할 것인지 아울러 상고하여 첩보하라.

협주 2

六月二十九日

저본은 「事孤條理」이나 「事無條理」의 잘못으로 봄.

유월 스무아흐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