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6 군문등록

황해도 관찰사에게 보낸 글移黃海道巡察使文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89자 · 낭독 3.1분

징비록 권16 군문등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道內糧餉措置之事專在於本道大抵足兵在於足食不得已則寧去兵而不能去食聖人之慮遠矣今兵興未弭而在處糧竭脫有調度之事及有水旱之災則將以何術接濟此乃至急至大之事况今葉遊擊奉軍門之令出來督責本國各於沿路舘站備三萬人一二日之糧勢難違拒。朝廷方患無䇿萬一兵出而糧不繼則當事之人當受其責殊非細慮道內黃州龍泉平山三站若有軍興之事則儲糧接濟之䇿將何以處之宜預先計度一一牒報相議處置古者兵興之際理財之要必以鹽鐵爲上本道濱海之地魚鹽之利不可勝記而自前不能勾管散入於私門故當此窘竭亦拱手而不爲之計本府尋常慨歎若使沿海一二邑守令爲國盡心奉行命令則事可易就不然則必出士人之有計慮能措置不貽弊端者區畫經紀使公私兩便灌輸貿糓於京江及各處則一年所得雖至於數萬石可也比諸零碎收拾於空名募粟之擧者其效遠矣急速商量查考道內魚鹽興產處幾處鹽戶完集之䇿當在何術船隻往來何以無弊主管其事者何人合宜一一商量畫爲條目急速飛報以憑裁處

도내 군량을 마련하는 일은 오로지 본도에 달렸다. 대저 군사를 넉넉히 함은 먹을 것을 넉넉히 함에 있으니, 부득이하면 차라리 군사를 버릴지언정 먹을 것은 버리지 못한다 하였다. 성인의 염려가 멀다.

이제 군사 일이 그치지 않았는데 곳곳에 양식이 다했다. 만일 조달할 일이 생기거나 장마와 가뭄의 재앙이 있으면 장차 무슨 꾀로 대어 건지겠는가. 이야말로 지극히 급하고 지극히 큰 일이다. 하물며 이제 섭 유격(葉遊擊)이 군문의 영을 받들고 나와 본국을 독촉하기를, 연로의 관참마다 삼만 명의 하루 이틀 양식을 갖추라 하니 형세가 어기기 어렵다. 조정이 바야흐로 계책 없음을 근심한다. 만일 군사가 나왔는데 양식이 잇대지 못하면 일 맡은 사람이 그 책망을 받을 것이니 자못 작은 염려가 아니다. 도내 황주·용천·평산 세 참에 군사 일이 있으면 양식을 쌓아 대어 줄 계책을 장차 어찌하겠는가. 마땅히 미리 헤아려 하나하나 첩보하고 의논하여 처치하라.

옛날 군사를 일으킬 때 재물을 다스리는 요체는 반드시 소금과 쇠를 으뜸으로 삼았다. 본도는 바다에 닿은 땅이라 고기와 소금의 이익을 이루 다 적을 수 없는데, 예로부터 구관하지 못하여 사삿집으로 흩어져 들어갔다. 그러므로 이렇게 군색하고 다한 때를 당하여도 손을 맞잡고 앉아 계책을 세우지 못하니 본부가 늘 개탄한다.

만약 바닷가 한두 고을 수령이 나라를 위하여 마음을 다해 명령을 받들어 행하면 일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계책이 있어 능히 조치하되 폐단을 끼치지 않을 선비를 내어 구획하고 경영하게 하여 공과 사가 다 편하게 하라. 경강과 여러 곳에 실어 보내어 곡식을 사들이면 한 해 얻는 바가 수만 석에 이르러도 좋다. 공명첩으로 곡식을 모으는 일에서 자질구레하게 거두는 것에 견주면 그 효험이 훨씬 멀다.

급속히 헤아리라. 도내에 고기와 소금이 나는 곳이 몇 곳인지, 염호를 온전히 모을 계책이 어느 길에 있는지, 배가 오가는 데 어찌해야 폐단이 없는지, 그 일을 주관할 자는 누가 마땅한지 하나하나 헤아려 조목으로 그려 급속히 알려, 재량하여 처치할 빙거로 삼게 하라.

협주 1

「공명(空名)」은 이름 적는 자리를 비워 둔 벼슬 첩지를 주고 곡식을 받던 일을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