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6 군문등록

경기 순찰사에게 보낸 글移京畿巡察使文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252자 · 낭독 1.9분

징비록 권16 군문등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道內山城隨便修築以爲保民禦暴之計其中竹山山城正當淸州忠州兩路之會直走京師形勢之重甚於他處若於此地設築城壘爲前營以爲操鍊之所且於山下平野廣開屯田則又爲萬世之利前朝之末亦以此城禦蒙古此乃已試制勝之地自前欲爲修築而但恐功役浩大勢至動民其處之民流亡纔集土石之役不忍遽爾出令遷延到今今者年糓頗稔民間無艱食之憂且無唐兵往來之擾若失此時則後無可就之日若以前營所屬軍人及遺漏未抄於軍丁者調發築之被抄軍丁者稍减其役未抄者稍加其役乘農事稍歇之際數日爲役則似可成就惟役民事重功役多少亦難預期本道十分預爲計度且觀民情便否急速回報

도내 산성을 편의에 따라 수축하여 백성을 보전하고 사나움을 막을 계책으로 삼으라.

그 가운데 죽산 산성은 바로 청주·충주 두 길이 모이는 곳에 해당하여 곧장 서울로 달리니, 형세의 무거움이 다른 곳보다 심하다. 만약 이 땅에 성루를 쌓아 전영으로 삼고 조련하는 곳으로 하며, 또 산 아래 들판에 둔전을 널리 열면 만세의 이익이 된다. 전조 말년에도 이 성으로 몽고를 막았으니, 이미 시험하여 이겨 본 땅이다.

예로부터 수축하고자 하였으나 다만 공역이 커서 형세가 백성을 움직이게 될까 두려웠다. 그곳 백성이 흩어졌다가 겨우 모였으니 흙과 돌의 역을 차마 대뜸 영으로 내지 못하여 미루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는 곡식이 자못 익어 민간에 먹기 어려운 근심이 없고, 또 명나라 군사가 오가는 소요도 없다. 이때를 놓치면 뒤에는 이룰 날이 없다.

전영에 붙은 군인과 군정에 빠져 뽑히지 않은 자를 조발하여 쌓게 하되, 뽑힌 군정은 그 역을 조금 덜고 뽑히지 않은 자는 그 역을 조금 더하며, 농사가 한가한 때를 타서 며칠 역을 지우면 이룰 수 있을 듯하다. 다만 백성을 부리는 일은 무겁고 공역의 많고 적음도 미리 기약하기 어려우니, 본도는 십분 미리 헤아리고 또 민정이 편한지 아닌지를 보아 급속히 회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