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6 군문등록

평안도 순찰사와 병사에게 보낸 글移平安道巡察使兵使文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1,524자 · 낭독 11.5분

징비록 권16 군문등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自古鍊兵之事有二條軍食有餘則募得精勇之軍餉以官糧聚於一處而將官統之晝夜訓鍊此唐宋以來以及今日皇朝養兵之制爲然也軍食不足則不能餉軍故各從鄕里團束部伍而於其里中出統率之人使於農隙隨便操鍊有時聚會一處習陣訓閱此乃管子內政篇遺法而唐時澤潞節度使李抱眞亦用此法教鍊步卒二萬澤潞軍兵爲一時藩鎭之最亦其一法也今我國糧儲蕩然餉軍無路雖欲聚兵訓鍊其路無由且各邑遠處之兵每因操閱之事分番往來裹糧立番非徒勞苦倍甚而農時則廢失農務或至於飢鐘流散此亦鍊兵之極弊而民情之所不堪者也本府深察此弊於京畿則分爲四營以道內諸邑從其附近屬於四營而束伍之規則一從鄕里團結人多則隊伍亦多人少則隊伍亦少未甞移近就遠合此聚彼大槪如鄕徒作契之法一切務在便民而乘其暇日各在其處操鍊所業哨官計其畫數送於把抱把摠送於營將營將申於監兵使以行賞罰若於習陣之時則或合一營之軍校閱於一營或合四營之軍大閱於中央此乃京畿近日鍊兵大槪也傳聞本道則各處之軍每月分番直宿於官中往來煩費未免廢農失時之弊束伍之軍各自有身役旣爲立番於操鍊之處又自供其原役一身兩處奔走人力亦所不堪當初激鍊未成之前猶可如此今則砲殺射手等幾盡成就宜使之各在其處佐法操鍊而其新入束伍者次次傳習則一人可以敎十十人可以激百不多日內一道之民各成敎鍊之軍事甚便益惟成才上等者必有論賞之規然後可以激勸他人若勿論成才與否而徒以編入束伍之故盡免雜役則他民之未入束伍者偏受其弊怨苦必甚而亦非經久通行之規故京畿則於各隊中較其才藝分爲上中下三等上等則量免雜役某某條中等則次之下等則與平民一般而別無免役之事有事調發則或令徵發上等或令徵發中等上等軍人徵發則中下等軍人留在其處中等軍人徵發則下等軍人留在其處旣無冗雜盡發之患又無本處閭里空虛之弊事甚便宜此等條件十分參商且訪民情便否劃卽報禀施行邊上鎭堡辛亥年加設立之時或五里或十里之間連次設堡相望不絕而各出堡將率軍官數人料食則雖出於官倉而凡差備供奉則皆出於軍士故軍士不堪其苦漸至流散官倉之儲亦因此耗盡若於防戍之計有關則些少之弊似不可顧此則以其軍少不足以禦賊故合氷後防緊之時則盡空其地而疊入於他鎭是平居但有侵虐軍卒耗食官廩之弊而臨急實無所用此事亦當相時變通以蘇塞上之民本府之意自江界以下以及義州疊入諸堡但依。中朝煙墩之例堅築墩臺只令瞭望擧烽而勿置堡將但以土兵之有計慮者作爲隊長使處其中而其間別於大鎭合聚軍兵以爲必守之計則如有事變墩臺連絡足以報變而大鎭軍兵旣多形勢壯固亦可以合力制敵其於防戍恤民兩皆便宜此事亦與兵使相議幷爲巡問於江邊土兵之老於邊事有識慮者得其便宜可行之䇿如某堡則當合於某鎭詳細枚擧牒報本道水軍入番處只有宣沙浦老江廣梁其役不至困極而但以中原行次遼東護送軍之役水軍不堪其苦近日則節使之外別行次相望不絕民力尤爲困竭此則當何以處置亦爲參商訪問得其可行之䇿詳細牒報兵亂之後馬匹比前益貴遼東往還刷馬民間辦出無路此非小患往在甲午年間備邊司請於遼東貿得雄驢數十餘頭於道內牧場水草便美處聚雌馬百餘頭放驢於其中使之生育則數年之後騾子興產因以成長漸至蕃息則凡驛路馬匹不足處及遼東一路轉運路費等事皆可取辦於此必爲永久之利。啓下已久而未聞施行今則中江已爲開市此事若可擧行則以某物貿得驢子多少間可以試其行否亦爲商量牒報我國當初制法未免茍簡如邊將不爲官供而取食於軍士之類是也本府之意某條措置於海邊諸鎭各儲糓數千餘石以爲之本而春秋歛散令近處之民受食略如郡縣倉庫之法每歲除出費耗以爲邊將之食而永絕軍士侵剝之路則水軍庶可蘇息此亦參酌牒報江邊助防將每於合冰時使內地守令各率牙兵陪牌遠入諸鎭使之協守其初設立之意只爲防備一事但此事已成積久之弊其於防備亦米見其有益今則事與平時有異。天兵往來絡繹內地守令不可一日離官江邊助防之事尤似難便此亦何以處置利害便否幷百分參酌牒報

예로부터 군사를 익히는 데 두 가지 길이 있었다. 군량이 넉넉하면 정예하고 날랜 군사를 모집하여 관가 양식으로 먹이고 한 곳에 모아 장수와 군관이 거느려 밤낮으로 훈련한다. 이는 당·송 이래로 오늘 명나라의 군사 기르는 제도가 그러하다. 군량이 넉넉하지 못하면 군사를 먹이지 못하므로, 저마다 제 고장을 따라 부오를 묶고 그 마을에서 거느릴 사람을 내어 농사 틈에 편의를 따라 조련하게 하며, 때로 한 곳에 모아 진법을 익히고 점고한다. 이는 곧 관자 내정편이 남긴 법이다. 당나라 때 택로 절도사 이포진(李抱眞)도 이 법을 써서 보졸 이만을 가르쳐 익히니 택로의 군병이 한때 번진의 으뜸이 되었으니, 또한 그 한 법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쌓은 양식이 씻은 듯하여 군사를 먹일 길이 없으니, 비록 군사를 모아 훈련하고자 하여도 그 길이 없다. 또 각 고을 먼 곳 군사는 매양 조련과 점고하는 일로 번을 나누어 오가며 양식을 싸고 번을 서니, 한갓 수고로움이 갑절 심할 뿐 아니라 농사철에는 농사를 잃고 혹은 주려 흩어지기에 이른다. 이 또한 군사를 익히는 데 지극한 폐단이요 민정이 견디지 못할 바다.

본부가 이 폐단을 깊이 살펴 경기에서는 네 영으로 나누고 도내 여러 고을을 가까움을 따라 네 영에 붙였다. 속오의 규례는 한결같이 제 고장을 따라 묶어, 사람이 많으면 대오도 많고 사람이 적으면 대오도 적게 하였다. 가까운 데를 옮겨 먼 데로 나아가게 하거나 이것을 합하고 저것을 모은 적이 없으니, 대개 향도가 계를 맺는 법과 같아 일절 백성을 편케 함에 힘썼다. 한가한 날을 타서 각각 제 곳에서 조련하고, 초관이 그 일과 날수를 헤아려 파총에게 보내고, 파총은 영장에게 보내고, 영장은 감사와 병사에게 아뢰어 상벌을 행한다. 진법을 익힐 때에는 혹 한 영의 군사를 합하여 한 영에서 점고하고, 혹 네 영의 군사를 합하여 가운데서 크게 점고한다. 이것이 경기에서 요사이 군사를 익히는 대개다.

전하여 듣건대 본도는 각처 군사가 달마다 번을 나누어 관가에서 숙직하여 오가는 비용이 번거로워 농사를 폐하고 때를 잃는 폐단을 면치 못한다 한다. 속오의 군사는 저마다 제 신역이 있는데, 이미 조련하는 곳에 번을 서고 또 제 본역까지 스스로 바치니, 한 몸이 두 곳에 분주하여 사람 힘으로 견딜 바가 아니다. 처음 격려하여 익히기를 이루지 못한 때에는 오히려 이렇게 할 만하였으나, 이제는 포수·살수·사수 따위가 거의 다 이루어졌다. 마땅히 저마다 제 곳에서 법대로 조련하게 하고, 새로 속오에 든 자는 차차 전해 익히게 하라. 그러면 한 사람이 열을 가르치고 열 사람이 백을 격려하여 며칠 안에 한 도 백성이 다 가르쳐 익힌 군사를 이루니 일이 심히 편하고 이롭다.

다만 재주를 이룬 상등에게 반드시 상을 논하는 규례가 있은 뒤에야 다른 사람을 격려할 수 있다. 만약 재주를 이루었는지 아닌지를 묻지 않고 한갓 속오에 편입되었다 하여 잡역을 다 면해 주면, 속오에 들지 않은 다른 백성이 치우쳐 그 폐를 받아 원망과 괴로움이 반드시 심할 것이요, 또 오래 통행할 규례도 아니다. 그러므로 경기에서는 각 대 가운데 재주를 견주어 상·중·하 세 등으로 나누었다. 상등은 잡역 아무아무 조목을 헤아려 면하고, 중등은 그다음으로 하며, 하등은 평민과 한가지로 하여 따로 역을 면하는 일이 없다. 일이 있어 조발하면 혹 상등을 징발하고 혹 중등을 징발한다. 상등 군인을 징발하면 중등·하등 군인이 그곳에 머물러 있고, 중등 군인을 징발하면 하등 군인이 그곳에 머물러 있다. 이미 쓸데없이 다 징발하는 근심이 없고 또 마을이 텅 비는 폐단도 없으니 일이 심히 편하고 마땅하다. 이런 조건을 십분 참작하여 헤아리고, 또 민정이 편한지 아닌지를 물어 곧 아뢰어 시행하라.

변방 진보를 신해년에 더 세울 때, 혹 오 리 혹 십 리 사이에 잇달아 보를 두어 서로 바라봄이 끊이지 않았다. 저마다 보장을 내어 군관 두어 사람을 거느리는데, 요식은 비록 관창에서 나오나 무릇 차비와 뒷바라지는 다 군사에게서 나오므로 군사가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점점 흩어짐에 이르고, 관창에 쌓은 것도 이로 말미암아 닳아 없어진다. 만약 방수하는 계책에 관계가 있다면 사소한 폐단은 돌아보지 않아도 좋겠으나, 이는 군사가 적어 적을 막기에 부족하므로 얼음이 언 뒤 방비가 긴한 때에는 그 땅을 다 비우고 다른 진에 겹쳐 들어간다. 그러니 평소에는 다만 군졸을 침학하고 관가 곡식을 축내는 폐단만 있고, 급함에 임하여는 실로 쓸 데가 없다. 이 일도 마땅히 때를 보아 변통하여 변방 백성을 살려야 한다.

본부의 뜻은 이러하다. 강계 아래로 의주에 이르기까지 겹쳐 든 여러 보는 다만 중국의 연돈 예에 따라 돈대를 굳게 쌓아 바라보고 봉화 들기만 하게 하고, 보장은 두지 말라. 다만 토병 가운데 계책 있는 자를 대장으로 삼아 그 안에 있게 하고, 그 사이에 따로 큰 진에 군병을 모아 반드시 지킬 계책으로 삼으라. 그러면 사변이 있을 때 돈대가 이어져 변을 알리기에 족하고, 큰 진은 군병이 이미 많아 형세가 굳세니 또한 힘을 합쳐 적을 제어할 수 있다. 방수하는 일과 백성을 돌보는 일에 둘 다 편하고 마땅하다. 이 일도 병사와 서로 의논하고, 아울러 강변 토병 가운데 변방 일에 늙고 식견 있는 자에게 두루 물어 편하고 행할 만한 계책을 얻으라. 아무 보는 마땅히 아무 진에 합할 것이라는 식으로 자세히 낱낱이 들어 첩보하라.

본도 수군이 번드는 곳은 다만 선사포·노강·광량이 있어 그 역이 지극히 곤하지는 않다. 다만 중원 행차와 요동 호송군의 역으로 수군이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요사이는 절사 밖에 따로 가는 행차가 서로 바라보며 끊이지 않아 백성의 힘이 더욱 다했다. 이는 마땅히 어찌 처치할 것인가. 또한 참작하고 물어 행할 만한 계책을 얻어 자세히 첩보하라.

병란 뒤에 말이 전보다 더욱 귀하여, 요동을 오가는 쇄마를 민간에서 마련해 낼 길이 없으니 이것이 작은 근심이 아니다. 지난 갑오년 사이에 비변사가 청하기를, 요동에서 수나귀 수십여 마리를 사 와 도내 목장 가운데 물과 풀이 좋은 곳에 암말 백여 마리를 모으고 나귀를 그 가운데 놓아 새끼를 치게 하자 하였다. 그러면 몇 해 뒤에 노새가 나고 자라 점점 번식하여, 무릇 역로에 말이 모자라는 곳과 요동 한 길의 실어 나르는 비용 따위를 다 여기서 마련할 수 있으니 반드시 길이 이익이 될 것이라 하였다. 계하한 지 이미 오래건만 시행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이제 중강에 이미 장을 열었으니 이 일을 거행할 만하면, 아무 물건으로 나귀를 많든 적든 사서 될지 아닐지를 시험할 수 있다. 또한 헤아려 첩보하라.

우리나라가 처음 법을 만들 때 구차하고 간략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변장이 관가에서 대어 주지 않고 군사에게서 먹을 것을 취하는 따위가 이것이다. 본부의 뜻은, 아무 조목으로 바닷가 여러 진에 조치하여 각각 곡식 수천여 석을 쌓아 밑천으로 삼고, 봄가을로 거두고 흩어 가까운 곳 백성이 받아먹게 하되 대략 군현 창고의 법과 같이 하며, 해마다 모곡을 덜어 내어 변장의 먹을 것으로 삼아 군사를 침탈하는 길을 길이 끊자는 것이다. 그리하면 수군이 거의 살아날 수 있다. 이 또한 참작하여 첩보하라.

강변 조방장은 매양 얼음이 얼 때 내지 수령으로 하여금 각각 아병과 배패를 거느리고 멀리 여러 진에 들어가 함께 지키게 한다. 처음 세운 뜻은 다만 방비 한 가지를 위함이었다. 다만 이 일이 이미 오래 쌓인 폐단이 되었고, 방비에도 이로움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다. 이제는 일이 평시와 달라 명나라 군사가 오감이 잇달으니, 내지 수령이 하루도 관아를 떠날 수 없어 강변을 조방하는 일이 더욱 어렵고 불편할 듯하다. 이 또한 어찌 처치할 것인가. 이해와 편부를 아울러 백분 참작하여 첩보하라.

협주 4

저본은 「或至於飢鐘流散」이나 「飢饉」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佐法操鍊」이나 「依法」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亦米見其有益」이나 「未見」의 잘못으로 봄.

「연돈(煙墩)」은 봉화를 올리려 흙과 돌로 쌓아 둔 돈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