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6 군문등록

네 도 순찰사와 병사에게 보낸 글移四道巡察使兵使文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69자 · 낭독 3.1분

징비록 권16 군문등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親民之官莫切於守令而守令之盡職與否在於殿最嚴明一循公道不以殿譽亂實而已。國家設一年兩考之法爲上中下三等之考其意不偶然也如使殿最甚嚴而守令之盡心奉公者得居上考怠慢職事貪殘病民者無所容護則自然惠澤及民而治道可擧矣近者蕩敗之餘民生鮮薄比之平時之民怨苦萬倍而又有調發轉輸迎接唐官責出刷馬等事民生艱苦極矣當此之時守令又復行其苛虐之政或刑罰殘暴讎歛多端憑公營私多接親故病民之政有同蝟毛而。朝廷不知監司不聞則民生將何所赴訴哉甚者以善爲惡以惡爲善能否倒置賞罰逆行勸懲之路一混於上而民生之怨無時可袪尤爲寒心此則一方風憲之地雖欲辭其責而不可得也至於邊將鎭堡軍卒撫摩凋療與否所係非輕此等殿最尤不可不嚴也本府受。命體察四道今已二年而尙未出巡所管地方故其於守令賢否雖或得之傳聞未能詳知今此冬月殿最道內守令邊將實績各別嚴明考覈。啓聞後其中尤甚能否者具實續牒報本府以憑查覈處置

백성을 가까이하는 벼슬로 수령보다 간절한 것이 없고, 수령이 직분을 다하는지 아닌지는 전최를 엄히 밝혀 한결같이 공도를 좇아 헐뜯음과 기림으로 실상을 어지럽히지 않는 데 있을 뿐이다. 나라가 한 해 두 번 고과하는 법을 두어 상·중·하 세 등으로 매기게 하였으니 그 뜻이 우연하지 않다. 만약 전최를 심히 엄하게 하여, 마음을 다해 공을 받드는 수령이 상등에 들고 직사에 게으르며 탐하고 사나워 백성을 병들게 하는 자가 용납되어 감싸일 데가 없게 하면, 자연 은택이 백성에게 미쳐 다스리는 도가 행해질 것이다.

요사이 다 무너진 나머지 백성의 살림이 엷고 박하여 평시 백성에 견주면 원망과 괴로움이 만 배인데, 게다가 조발하고 실어 나르며 명나라 관원을 맞고 쇄마를 내라 채근하는 따위 일이 있어 백성의 고생이 지극하다. 이런 때를 당하여 수령이 또다시 가혹하고 사나운 정사를 행한다. 혹은 형벌이 모질고, 거두어들임이 여러 갈래며, 공을 빙자해 사를 경영하고, 친구를 많이 접대하니, 백성을 병들게 하는 정사가 고슴도치 털과 같다. 그런데도 조정이 알지 못하고 감사가 듣지 못하면 백성이 장차 어디에 가 호소하겠는가.

심한 자는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하여, 잘하고 못함이 뒤바뀌고 상벌이 거꾸로 행해진다. 권하고 징계하는 길이 위에서 한번 뒤섞이면 백성의 원망을 없앨 때가 없으니 더욱 한심하다. 이는 한 지방 풍헌의 자리로서 비록 그 책임을 사양하고자 하여도 얻지 못할 바다. 변장과 진보에 이르러 군졸을 어루만지고 시들고 병든 것을 고치는지 아닌지는 매인 바가 가볍지 않으니, 이런 전최는 더욱 엄하지 않을 수 없다.

본부가 명을 받아 네 도를 체찰한 지 이제 두 해인데 아직 맡은 지방을 순행하지 못하였으므로, 수령이 어진지 아닌지를 혹 전해 들어 알았을 뿐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번 겨울 전최에 도내 수령과 변장의 실적을 각별히 엄하고 밝게 상고하여 계문한 뒤, 그 가운데 더욱 심하게 잘하거나 못한 자를 사실대로 갖추어 잇달아 본부에 첩보하여, 조사하여 처치할 빙거로 삼게 하라.

협주 4

저본은 「不以殿譽亂實」이나 「毁譽」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讎歛多端」이나 「誅歛」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撫摩凋療」이나 「凋瘵」의 잘못으로 봄.

「풍헌(風憲)」은 한 지방의 기강을 맡은 자리를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