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6 군문등록

황해도 순찰사에게 알린 글諭黃海道巡察使文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542자 · 낭독 4.3분

징비록 권16 군문등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本道軍兵束伍鍊習等事必已漸次成就矣賊情已變明春之事極爲可慮凡百措置乘此數月之內少無遺漏然後可以應倉率之變軍卒雖束伍而器械未備則無空手赴敵之理束伍中軍人所持器械皆爲點檢有無無者自官家措備以給本道之民勇悍善戰爲諸道之最如黃州延安鳳山安岳等處最爲武士之鄕今雖束伍而其外必多漏落經職可用之士前日義兵將成册相考招集使之多方抄擇以精勇爲主不使冗雜各義兵將中可堪統率者領之一人不必多領多則百名少則或五十名或二十餘名隨其所得分爲隊伍預備弓箭常川習射而臨時聽主將分付被抄之軍今送選牌見樣相考隨其軍數多備各自佩持別爲一類後成册上使雖有軍兵百萬無食可餉則終爲無用之物道內見存軍糧按簿可知其數至少不足以支數千兵一月之食脫有天兵大勢出來尤無支撑之勢凡干聚糓之道多般講究急速收合儲峙待用各官元糓中皮糓或作米收捧以便軍餉似爲宜當但各官倉糓今已畢捧則已捧之糓還爲散給迫促春正卜定其數又爲太重則民怨必深當此民生怨苦之際亦難輕易施行在本道參商民情事勢便宜處置海州不比他邑米糓所當優數儲峙以備意外之需而考見倉糓置簿則雜糓幷僅二千餘石可爲寒心海州倉糓別樣措置頃日朴汝龍募得米豆三千餘石亦當輸入於海洲道從事官所募米豆幷四百餘石留在鳳山此乃直路所經切於迎接。天兵因爲留置其處同郡箭竹和賣米糓亦在其處新郡守邊好謙處傳授以助軍餉之萬一

본도 군병의 속오와 익히는 따위 일이 반드시 이미 점차 이루어졌을 것이다. 적의 속이 이미 변하였으니 내년 봄 일이 지극히 염려스럽다. 온갖 조치를 이 몇 달 안에 조금도 빠뜨림이 없게 한 뒤에야 갑작스러운 변에 응할 수 있다.

군졸이 비록 속오에 들었어도 병기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빈손으로 적에게 나아갈 이치가 없다. 속오 가운데 군인이 가진 병기를 다 있고 없음을 점검하고, 없는 자는 관가에서 마련하여 주라.

본도 백성은 날래고 사나워 잘 싸우니 여러 도의 으뜸이요, 황주·연안·봉산·안악 등지는 가장 무사가 많은 고장이다. 이제 속오를 하였으나 그 밖에 빠진, 일찍이 벼슬을 지낸 쓸 만한 선비가 반드시 많을 것이다. 지난날 의병장의 성책을 상고하여 불러 모으고 여러 모로 가려 뽑되, 정예하고 날램을 주로 하여 쓸데없이 섞이지 않게 하라. 각 의병장 가운데 거느림을 감당할 만한 자가 거느리되 한 사람이 많이 거느릴 것은 없다. 많으면 백 명, 적으면 혹 쉰 명 혹 스무남은 명을 얻은 대로 대오를 나누라. 미리 활과 화살을 갖추어 늘 활쏘기를 익히다가, 때에 임하여 주장의 분부를 들으라. 뽑힌 군사는 이제 보내는 선패 본보기를 상고하여 군사 수에 따라 넉넉히 갖추어 저마다 차게 하고, 따로 한 부류로 삼아 뒤에 성책하여 올려 보내라.

비록 군병 백만이 있어도 먹일 것이 없으면 마침내 쓸데없는 물건이 된다. 도내에 지금 있는 군량은 장부를 상고하면 그 수를 알 수 있는데, 지극히 적어 군사 수천의 한 달 먹을 것을 대기에도 모자란다. 만일 명나라 군사가 큰 형세로 나오면 더욱 지탱할 형세가 없다. 무릇 곡식을 모을 길을 여러 모로 강구하여 급속히 거두어 모아 쌓아 두고 쓰기를 기다리라.

각 고을 원곡 가운데 겉곡은 혹 쌀로 만들어 거두어 군량에 편하게 함이 마땅할 듯하다. 다만 각 고을 창고 곡식을 이제 이미 다 거두었으면, 이미 거둔 곡식을 도로 나누어 주고 봄 정월을 재촉하여 그 수를 정하는 것이 또 너무 무거우면 백성의 원망이 반드시 깊을 것이다. 이렇게 백성이 원망하고 괴로운 때를 당하여 또한 가벼이 시행하기 어려우니, 본도가 민정과 일의 형세를 참작하여 편의대로 처치하라.

해주는 다른 고을에 견줄 바가 아니니 쌀과 곡식을 마땅히 넉넉한 수로 쌓아 두어 뜻밖의 쓰임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창고 곡식 장부를 상고해 보니 잡곡을 아울러 겨우 이천여 석이니 한심하다. 해주 창고 곡식은 각별히 조치하라. 지난날 박 여룡(朴汝龍)이 모아 얻은 쌀과 콩 삼천여 석도 마땅히 해주로 실어 들이라.

도 종사관이 모은 쌀과 콩 아울러 사백여 석은 봉산에 머물러 있다. 이는 곧은 길이 지나는 곳이라 명나라 군사를 맞는 데 절실하니 그대로 그곳에 두라. 그 고을의 전죽을 팔아 바꾼 쌀과 곡식도 그곳에 있으니, 새 군수 변 호겸(邊好謙)에게 전해 주어 군량의 만분의 일이라도 돕게 하라.

협주 3

저본은 「亦當輸入於海洲」이나 「海州」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後成册上使」이나 「上送」의 잘못으로 봄.

「전죽(箭竹)」은 화살대로 쓰는 대나무다.